죽음이 일상화된 오지에서의 기도

지난 10월, 아프리카 남부 수단에서 있었던 일이다. 월드비전 한국이 3개년 계획으로 보건 의료사업을 펼치고 있는 그곳은 명색이 오지여행가요 긴급구호 팀장인 내게도 지독한 오지였다. 진흙탕과 다름없는 자동차 길에서 1분만 벗어나도 신발은커녕 옷을 제대로 입고 있는 아이를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은 소, 말 등이 대소변을 마구 보는 강물을 그냥 퍼서 마시는데 물과 함께 기니아충 알도 마신다. 그 알이 몸 안에서 부화하면 1m가 넘는 성충이 되어 아이들 팔다리의 생살을 사방으로 뚫고 나온다.

직원숙소 텐트에는 모기나 전갈은 물론 팔뚝만한 뱀들이 수시로 들어오고 말라리아도 창궐해 이곳에서 근무한 우리 팀원 중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30여만명을 대상으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치료하고 영아에게 치명적인 4대 질병을 예방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날은 이동보건소를 운영하는 날이었다. 반경 수십㎞ 안에 있는 마을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영·유아에게는 백신주사를 놓고,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에게는 옥수수가루와 콩가루를 섞은 영양죽을 배분하며, 극심한 영양실조상태인 아이들은 치료소에 입원시켜 집중치료를 받게 한다. 하루 종일 시골장터처럼 시끌벅적했던 이동진료소가 거의 파할 쯤 어떤 젊은 아버지가 땀을 비오듯 쏟으며 왔다. 땡볕아래 5시간을 걸어온 것이다. 염소가죽에 싸여 있던 아통이라는 한 살짜리 여자아이는 한눈에 봐도 극심한 영양실조상태였다. 몇 달 전 엄마가 죽어 염소젖을 물에 타서 먹여왔다는데 몸이 불덩이처럼 뜨겁고 눈동자가 풀려있고 항문도 열려있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현지의사의 지시에 따라 즉시 입원치료소로 옮겼다.

치료소에 도착하자마자 아이에게 물을 먹였다. 꿀꺽 꿀꺽, 아통의 물마시는 소리가 어찌나 우렁차던지. "나 이제 살았어요"라고 하는 듯했다. 의사 말로는 아통이 오늘 중에 우리를 만나지 못했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단다. 설사는 매우 심하지만 폐렴 등 합병증이 없으니 2주일 정도 집중치료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거라고 했다. 아통 아버지의 얼굴에 비로소 화색이 돌았다. 기쁜 마음에 아통을 들쳐 안았는데 글쎄 내 윗도리에 설사를 한바탕 쫘악 하는 거 아닌가. 냄새가 진동했지만 그래도 밉지 않았다. 밉기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데.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데.

그날 이렇게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생후 6개월 된 아기는 치료소로 오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 죽은 아기의 집에 가 보았다. 방금 만든 네모난 흙무덤 위에는 조그만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젊은 엄마는 거의 넋이 나가 있었다. 2년 전 둘째 아들이 병으로 죽고 몇 달 전에는 남편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막내가 아플 때 마을사람들은 이 집에 저주가 내린 게 분명하다며 주술사에게 액땜의식을 하라고 강권했지만, 이 엄마는 남편이 죽은 직후 크리스천이 되었기 때문에 막내의 목숨은 하나님께 맡기고 싶었단다. 그래서 하나님께 열심히, 정말 열심히 살려 달라고 기도했지만 기어이 아기를 빼앗아갔다며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슬픔으로 떨고 있는 엄마의 손을 잡으니 위로의 기도 대신 불경한 원망의 기도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왜 그러셨어요, 하나님. 왜 이 아이를 살려주지 않으셨나요? 미신과 주술이 판치는 이 마을에 유일한 크리스천인 이 엄마의 아기를 왜 죽게 내버려두셨나요? 왜 마을사람들이 당신을 의심하며 마음껏 크리스천을 조롱하게 만드셨나요? 10시간만 빨리 우리를 만났어도 살수 있었다는데, 이 아기의 죽음이 도대체 하나님께 무슨 영광이 되는건가요?"

기도하는데 가슴이 쿡쿡 쑤시면서 숨이 꽉 막히더니 내 눈에도 아기 엄마처럼 굵은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손을 더욱 꽉 잡으니까 오히려 그 엄마가 날 위로하듯 내 어깨를 다독거려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나의 이 슬픔을 함께하라고 주님이 당신들을 보내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