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0대로 접어드는데 지금도 젊은 세대에게 언니, 누나라고 불리며 그들에게 꿈만 같은 존재인데요.
대학원 시절부터 머리로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 후 외국계 홍보회사에 다니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세계지도를 펼쳐봤는데 그다지 넓어 보이지 않더군요.

한씨의 부모님은 집안의 벽면에 항상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을 
많이 사왔다. 한씨의 티셔츠, 가방, 저금통, 식판, 필통 등에 모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고,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세계일주를 꿈꾸게 됐다. 그래서인지 한씨는 지구를 커다란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 집에 아시아방, 아프리카방, 
유럽방 등이 있다는 것이다.

1993년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여행한 나라는 어디지요.
네팔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산에 가자는 생각에서였어요. 그 다음은 말라위,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를 거쳐 중동으로 갔습니다. 1년8개월 정도 걸린 것 같네요. 중간에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탐험가 리빙스턴의 코스와 비슷하군요. 대륙을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겠네요.
그럼요.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모든 대륙이 이어져 있잖아요. 그 길을 막는 것은 자연이 아닌 인간이죠.

두 번째 세계여행은 어땠나요.
남미에서 시작해 중미를 거쳐 북미로 갔어요. 아르헨티나, 칠레, 멕시코, 미국, 알래스카 등을 1년 넘게 걸어다녔죠. 
두 번째 여정을 끝내고는 책을 쓰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는 책을 통한 수입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죠.

그 다음 여행지는 어디였습니까.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중국, 몽골을 돌아봤어요. 그리고 홈그라운드인 한국은 마지막에 살펴봤어요.

여행과 봉사를 통해 얻은 경험을 담은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죠.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전 4권)은 100만부,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은 60만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70만부 정도 팔렸어요.

한국의 어른들은 경쟁과 성취를 강조하는데, 耭쓴?책을 통해 이와는 다른 가치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특히 젊은 세대에 힘이 되고 빛이 되는 것 같네요. 독자들로부터 수많은 편지를 받았을 텐데요.
손으로 쓴 편지를 저처럼 많이 받은 사람도 드물 겁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경우는 “내 삶의 변화를 느낀다. 
같이 동행하고 싶다”는 편지가 많았어요. 편지의 또 다른 특징은 세대를 막론하고 저를 언니, 누나라고 불러요. 
저를 친근하고 만만하게 보는 것이 저도 좋아요.

만만해 보이는 사람이 만만치 않음을 지니고 있는 것은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의 좋은 자질이라고 봅니다. 
그런 비야씨의 품성이 어떻게 길러졌는지, 어린 시절과 가족관계가 궁금하네요.
아버지께서는 함경도 출신으로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1남3녀 중 셋째 딸인 제가 아버지하고 모습과 성격이 가장 
비슷해요. 아버지는 독서와 등산에 눈을 뜨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책냄새, 흙냄새, 밥냄새가 나요. 
등산 가면 꼭 밥을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제가 중2때 고혈압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1999년에 고혈압으로 돌아가
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집안 살림이 매우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저는 많은 것을 배웠어요. 가난이 저를 단련
시켰죠.

미국인 양부모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어졌습니까.
대입에 실패하고 클래식 다방에서 DJ를 했어요. 가요나 팝송과 달리 클래식은 레코드 한 장을 올리면 30분 정도가 
흐르죠. 그래서 공부할 시간이 넉넉했어요. 2년간 DJ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 양부모님을 만났어요.

양부모는 지금도 살아계시나요.
알래스카에 살고 계신데, 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한비야’를 아냐고 꼭 물어보시죠

고등학교 졸업 후 생계를 위해 클래식 DJ 말고도 많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고졸이라고 차별대우를 
 받지는 않았나요.
당시 고졸 아르바이트비는 무조건 대졸의 반이었어요. 학력위조의 유혹까지 느꼈죠. 남자친구 어머니로부터 수모도 
당했어요. 다방 DJ시절 만나던 사람이 있었어요. 남자친구 어머니는 제가 누군지 매우 궁금해 하셨죠. 그래서 인사드
리기 위해 그 사람 집으로 가게 됐고, 그 어머니는 대문 앞까지 뛰어나와서 저를 반겨주셨어요.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
가서 앉기도 전에 “비야는 어느 대학 다녀?”라고 물으시는 거예요. 저는 “대학교 안 다니는데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 분 얼굴이 갑자기 싸늘하게 변하면서 “아니, 고졸이란 말이야”라고 하시더군요. 목소리와 표정이 너무 무서웠어요. 
당시 그 분은 저에 대해서 아는 게 딱 두 가지밖에 없었어요. 고졸이란 학력과 제 이름 석 자. 저를 이루는 수만 가지 
요소 중에서 딱 두 가지밖에 모르시고는 저를 갑자기 미워하셨죠. 그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당시 저는 ‘사람을 
깔보는 눈빛은 정말 날카로운 칼과 같구나. 내가 상처를 받았으니 남에게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회는 그러한 눈빛을 가진 이들이 곳곳에 박혀 있죠.
어린 저는 피가 철철 나는 상처를 입었어요. 그때는 이 얘기를 아무에게도 못했죠. 생각할수록 상처를 입었으니까요. 

비야씨의 책을 읽어보면 봉사활동을 통해 그 상처를 완전히 극복한 것 같아요. 
또 책을 읽다보면 비야씨의 글쓰기는 출판계에 새로운 문체를 제시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 말하듯이 글을 쓰는데 그 목소리가 독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주파수에 딱 맞아요.
사실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노력은 하죠. 
책을 자주 쓰지 않기 때문에 자꾸 고치고 외울 정도까지 읽어봐요.

마음속에 담겨서 응축된 메시지가 최후에 글로 표현되기에 절실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요. 
술통 안에 누룩이 담겨 발효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잘 익은 술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또 생각이 아닌 사실이 쓰여지기 때문에 독자는 큰 감동을 받습니다.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어서 걸리는 부분은 끝까지 고쳐요. 그래도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마다 손이 덜덜 떨리는 걸요. 

고치고 또 고치는 것이 글쓰기의 모범 아닐까요. 
아무리 멋진 옷도 뒤집어보면 수천 번의 바느질이 있음을 확인할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매일 일기를 쓰는 것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쓰고 있죠. 
그리고 항상 메모를 해요.

비야가 본명은 아니죠.
천주교 세례명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개명을 해서 한자로 날 비(飛)에 들 야(野)를 써요. 
들판을 가로질러 나는 바람이라는 뜻이죠. 본명은 한인순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야씨는 강한 힘을 부드럽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의 위력에 대해서도 말해줄래요.
어수선한 구호 현장에서도 현지인이나 남자 직원이 줄을 서달라고 크게 외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상황이 곤란해질 때면 제가 트럭 위로 올라가요. 소말리아 같은 경우는 꼬마들도 총을 들고 다니니까 
매우 위험합니다. 하지만 제가 줄 서기를 호소하면 꼭 줄이 만들어져요. 희한하죠. 

‘커다란 쇠문은 힘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작은 열쇠로 열리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하드 파워가 아닌 소프트 파워예요. 

비야씨가 꿈꾸고 있는 세계시민학교와 난민촌 촌장에 대해 말해주시죠.
세계시민학교의 경우 캠프 생활을 통해 교육을 하는 거죠. 50명 정도가 한 조가 돼서 캠프를 꾸립니다. 각자 다른 
나라의 대표가 돼보는 거예요. 잘사는 국가 아이들이 못사는 나라 국민이 될 수도 있고 반대의 상황도 벌어지죠. 
그러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배우는 겁니다. 인생 90년을 축구에 비유하면 저는 이제 전반전을 뛰고 
막 후반전에 들어온 선수예요. 앞으로 저는 난민촌 촌장이 되고 싶어요.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들을 돌보는 것이죠.  

지구를 누비는 비야씨도 언젠가는 지구를 떠나겠죠. 한비야씨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하늘과 땅으로 
흩어질 텐데, 묘비에 어떤 말을 남겼으면 하나요.
‘다 쓰고 갑니다’라는 말이오. 제가 가진 에너지를 완전연소하고 가고 싶어요. 저는 제 50대가 너무 기대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