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위기가 ‘감사센서’를 달아줬어요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조증환자(躁症患者)'라고 놀린다. 누구나 기분이 좋았다 가라앉았다 하기 마련인데 나는 언제나 기분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란다. 내 목소리가 크고 높고 빨라서 더 그럴 거다. 사실, 좋아 보이는 게 아니라 나는 거의 언제나 기분이 좋다. 마음 상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방 풀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기 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반가워서 저절로 웃음이 난다. 위험하거나 열악한 구호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싱글벙글, 방금 다녀온 전쟁터의 참상을 텔레비전에 나와 전할 때 침통해야 하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생글거리며 말해 욕먹는 때도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물으면 뭐라고 콕 집어 할 말이 없다. 유전공학 하는 사람들은 그런 유전자를 타고났다고 하겠지만 내 짐작으로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생각해보라, 일상에서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크게는 전쟁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부터 조금 전 먹은 따뜻한 식사까지, 아침에 눈뜰 때부터 밤에 잘 때까지 감사할 일 투성이다. 자기는 도무지 감사할 일 없다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나는 이런 사람도 감사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질 않아서 그렇다고 믿는다.

현장에서는 쓸데없이 웃고 다니지 말고 진지하게 일하자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긴박한 구호현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요원이 있다. 미간에 내천 자를 그리며 각자의 할 일을 정확하게 갈라놓고는 열심히 인상쓰며 일하는 인상파와, 누가 조금만 웃겨도 배꼽 빠지게 웃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일을 훨씬 많이 한다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웃자파가 그것이다. 어느 유형이 더 좋은 결과를 내느냐? 내 경험으로는 둘 다 비슷하다. 그렇다면, 인상쓰며 닦달한다고 더 잘하는 것도 아니라면 실실 웃으면서 서로에게 고마워하면서 일하는 쪽이 더 남는 장사 아닐까?

내가 가진 얼마 되지 않는 좋은 습관 중 매일 밤 그날 있었던 감사할 일을 세 가지씩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여고시절, 어느 신부님이 권해준 인생의 지혜이자 신앙생활의 지혜다. 수십 년간 취침 전 기도 중에 감사할 일을 세 가지씩 말해 왔더니 감사하는 센서가 발달했는지 감사할 일이 점점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뿐이겠는가. 세계 오지여행 중 빙하지역 크레바스에 빠지기 직전에, 탈레반 사진을 찍었다고 병영으로 끌려갈 때, 지독한 말라리아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 때, 그리고 긴급구호 중 지뢰밭에서, 흉악한 반군지역에서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많이 구해주셨는지 모른다. 아니 아예 업고 다니신 것 같다. 이런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는다면 난 정말 사람도 아니다.

마땅히 감사할 일에 감사하는 것과 더불어 나는 감사할 수 없는 것까지 감사하는 성숙한 감사의 기도를 구호현장에서 배울 수 있었다. 7년 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에이즈가 창궐한 지역에 설상가상으로 지독한 가뭄이 든 곳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다 쓰러져가는 집 벽에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그 밑에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호기심에 그 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스무살 전후의 한 청년이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얼굴이며 목이며 양손에 부스럼이 가득한 게 한눈에도 에이즈 말기 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읽고 있던 책은 성경이었다. 담벽뿐 아니라 집안의 벽에도 온통 성경구절이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이 청년은 마을에서 성실하기로 이름난 교사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재작년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수술을 받을 때 수혈을 통해 에이즈에 걸렸다고 한다.

같이 갔던 크리스천 방송국 기자가 물었다.

"성경 어디를 읽고 있었어요?"

"욥기요. 하나님이 저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고통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랍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죠."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나요?"

"원망은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죠. 지금은 솔직히 몰라요. 왜 하나님이 에이즈에 걸리게 하셨는지.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고통 중에 있는 저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죠. 욥기의 욥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조용히 웃는 그 청년의 믿음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에이즈에 걸리게 했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겠지. 이 청년의 기도가 바로 성숙한 감사기도일 거다. 눈에 보이는 은총은 물론 고통을 가장한 은총까지도, 감사할 수 없는 것까지도 감사하는 기도 말이다. 따라하다 배운다던가, 나는 몇 년째 이 아프리카 청년식 감사기도를 열심히 따라하는 중이다.

나를 '조증환자'로 만든 결정적인 성경구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구절을 여러분께 드리며 두 달간의 칼럼을 마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월드비전 국제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