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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6일부터 11일까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이미 추워진 겨울날씨에도 불구하고, 30명의 중, 고, 대학생으로 이루어진 국가청소년 지원 청소년 봉사단이 봉사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봉사단들은 빈곤가정 게르 건축 봉사, 길거리 및 위기아동 보호 시설 봉사, 소년원 겨울철 땔감 준비 봉사, 몽골청소년들과 아동권리포럼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몽골의 실제 모습은 달랐다. 다음날 아침 맑은 하늘 아래 길거리에서, 버스 안에서, 그리고 수바타르 광장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울란바토르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도 여느 도시의 사람들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이승 승전기념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울란바토르 시내의 촘촘하게 붙어있는 작은 집들을 보면서 이런 낙후된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만 여행하고 그런 곳에서만 살아 본 경험이 있는 나에게 못사는 나라가 과연 이런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와 다른 몽골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차 몽골을 인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게는 궁금한 점이 남아 있었다. 과연 이렇게 낙후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만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몽골에서 직접 봉사를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조가 준비했던 그림 그리는 도화지에 자기 자신의 꿈을 적는 공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 하나를 위해서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밝아보였다. 우리는 2시간에 걸쳐 그림 그리기를 완성하고 그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먹는 중에도 그 아이들은 우리들을 위해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해주었다. 그 아이들은 정말 행복해보였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하는 그들에게서 그늘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작은 체육 대회를 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서 닭싸움, 제기 차기 등을 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 아이들이 경기에서 보인 행복한 웃음과 열정을 잊을 수 없다. 규칙을 지키며 경기에 열심히 임하는 자세가 오히려 우리나라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해보였다. 아쉽게도 우리는 경기 도중 갈 시간이 되어 그 아이들과 헤어졌다. 몇 시간 동안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어있어서 몇 시간만 더 있고 싶었다. 내가 봉사를 하고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러 갔지만 오히려 이 봉사를 통해 내가 그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그 아이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기도 전에 그 아이들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사랑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조는 아동복지센터가 이런 곳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갔다. 그래서 우리는 40명이 바글바글거리는 교실에 들어갔을 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5명 정도일거라고 예상하고 갔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은 이가 있어 머리를 박박 깎아버려 귀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고 씻지 않아 냄새도 심했다. 정신이 없었다. 두 세시간 동안 뭘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다. 먼저 닭싸움을 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거의 전쟁 분위기였다. 아이들에게 규칙을 설명해주었지만 전혀 지키지 않았고 이기기 위해 싸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생존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막막했지만 아이들을 안정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스케줄을 바꿔 그림그리기와 종이접기를 했다. 신경을 쓰지 않고 혼자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고 싸우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활동은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아이들은 결국 똑같은 또래의 아이들인데 라이트하우스의 아이들과 이곳의 아이들이 너무 달랐다. 라이트하우스의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갔다고는 하지만 라이트하우스의 순수한 아이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이 머리 속에서 상상이 되지 않았다. 너무 놀라웠다. 오전의 아이들은 너무 귀여웠던 반면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귀여움이란 것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던 갑자기 결국 사랑과 관심만이 이 아이들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트하우스의 아이들은 적당히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남아있는 시간이라도 이들에게 사랑을 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준비해간 그림 그리기는 했고 운동 경기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즉석해서 올챙이송을 외워 그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었다. 율동을 함께 하며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었고 내 눈에는 그 아이들의 참모습이 보였다. 하나같이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눈만 마주쳐도 수줍게 웃는 다를 것 없는 아이들이었다. 왜 진작에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까. 아쉬웠다. 하지만 시간은 많이 흘렀고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어 마지막으로 율동을 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었고 느낀 것도 많았다. 처음에는 절대 정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떠날 때는 많이 아쉬웠다. 사실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라이트하우스보다 아동복지센터가 더 많이 생각난다. 가끔씩 그 아이들이 지금 뭐하고 있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한다. 그 아이들이 하루빨리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아 라이트하우스의 아이들처럼 행복하게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번 몽골 봉사활동으로 이 세계에 이렇게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가 많다는 것, 하지만 그 사람들이 반드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사람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봉사활동을 하러, 사랑을 실천하러 갔지만 오히려 사랑을 받아온 것 같아 많이 행복하다. 내 주위에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소중한 사실을 느낀 것도 이번 봉사활동으로 얻은 정말 큰 수확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내가 만났던 몽골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커가면서, 그리고 세상을 배워가면서 실망하고 좌절할지라도 그 아이들이 지금의 웃음을 계속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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