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중앙] 5월호

극심한 내전 겪은 서아프리카 갔다온 김혜자, 한비야 충격 대담

언제나 차분함을 잃지 않는, 만년 소녀 같은 김혜자의 음성이 부들부들 떨린다. 인터뷰를 자청한 것도 처음. 월드비젼 봉사차 소아프리카를 다녀온 김혜자와 한비야. 두 사람은 거기서 무슨 일을 보고 왔기에 이처럼 충격을 받았을까.

한눈에 보기에도 평상시 얼굴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다 아픈 듯한, 우리나라 최고의 탤런트 김혜자씨.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들고온 가방을 들여다보니 한약 봉지며 약들이 가득하다. 사실 심상치 않은 목소리로, 그녀가 먼저 인터뷰를 요청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월드비젼 긴급구호팀장인 한비야씨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김혜자씨는 인터뷰 장소로 오기 전 침을 맞았다. 몸이 많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우황청심환도 먹고 전날에는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어야 했다. 평상시 에너지 넘치던 한비야씨도 몹시 힘든 얼굴이긴 마찬가지. 인터뷰 전 잠깐 눈을 붙여야 원기회복이 될 정도로 지쳐 있었다. SBS TV ‘기아 체험’ 겸 월드비젼 봉사차 떠난 이번 여행은 인도와 소아프리카가 목적지였다. 손꼽아보니 보름 동안 비행기와 헬기를 12번이나 탔다. 그러니 생병이 날 수밖에.

‘기아체험’은 해마다 방송 컨셉트를 정하는데 올해는 전쟁과 평화였다.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우리나라도 휴전 50주년이니 그 의미가 남다르다.

인도에 있다가 우리나라의 3분의 1 되는 크기의 시에라리온이라는 소아프리카의 한나라로 가면서 이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이 나라의 내전이 완전히 종식된 것은 작년. 유엔평화유지군이 들어오면서부터.

“그 나라는 10년 동안 벌어진 내전으로 전국민의 5분의 1이 죽었어요. 100만 명이 사망한 거죠. 그곳에서 ‘악’ 소리를 지르고, 벌벌 떨고…정말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세계의 가난하고 위험한 나라를 많이 둘러본 김혜자. 그런데 그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니…. 자신이 사람이라는 게 무서웠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비명을 얼마나 질렀는지 모른다. 두 사람 다 소아프리카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아프리카의 한 나라, 시에라리온에 도착한 날은 3월 31일이었다. 그곳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 두 사람은 평생 동안 들어온 것보다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다.

4월 1일부터 두 사람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일단 수도인 프리타운으로 갔다. 그곳에서 정부 각료들과 미팅을 했고 부통령과 면담을 가지기도 했다. 부통령은 “소년병,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장탄식을 했다.

4월 2일은 유엔 헬기를 타고 코노사업장으로 갔다. 코노는 다이아몬드로 유명한 곳. 귀향 난민 인터뷰 및 구호 물자 배분 현장을 방문했다. 한 귀향 난민 가족을 동행 취재했고 시에라리온 부족장 및 지역 도지사 등 지역 유력인사와 공식행사를 가졌다.

다음날인 4월 3일 다이아몬드 광산 노동현장을 방문했다. 충격적인 곳은 아동노동 현장인 ‘어린이 광산’. 어린이들이 사금을 채취하듯 물 속에 발을 담그고 허리를 굽혀 체를 흔든다. 하루 한끼만 먹고 하루종일 일해도 다이아몬드를 못 찾으면 돈을 받지 못한다.

이어 소년병 집중 인터뷰 시간을 가졌는데 마을의 소년 반군들이 주민들을 어떻게 다뤘나 하는 것을 알고 김혜자는 기절할 정도로 놀래버렸다.

“똑똑한 정치가가 없어서 내전이 일어난 거죠. 반정 쿠데타가 계속 일어났고 나라는 사분오열되었어요. 애들도 군인이 되지 않으면 죽으니까, 한마디로 총이 힘이니까, 장난감 갖고 놀 듯 사람을 죽였어요.”

여기에 있는 애들은 사람을 그냥 죽이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가를 연구했다. 사람을 죽이다 보니까 점점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 전부 미쳤다고밖에 표현이 안 되었다. 포로로 잡은 아들한테 어머니를 강간하라고 하고,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도록 잔인하고 엽기적으로 사람들을 죽였다.

두 사람은 어떤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한다. 벌겋게 되어 떠 있는 눈을 가진 여인. 아기를 업은 채로 소년병들에게 잡혔다. 소년병들이 아기를 강에 던졌고 그리고 나서 여자를 강간했다. 그리고 그녀를 집안으로 넣은 다음 불을 지르고 문을 잠갔다. 그들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그 여자는 기적적으로 도망쳐 나왔다.

그 여인이 숲 속으로 도망쳐 있는 사이 소년병들은 그 여인의 어머니를 토막내 살해한 뒤 그것을 뜨거운 팜유에 튀겨 먹었다.

소년병들은 또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마을 사람들을 잡아다 손을 작두로 잘랐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그녀는 아직도 낄낄거리던, 그들이 남기고 간 웃음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듣는 것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소년병들은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서 태아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기를 했고… 식인종처럼 사람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야수들이었고 그곳은 지옥이었습니다.”

김혜자와 한비야는 그 불쌍한 여인을 만난 이야기를 하며 누구랄 것도 없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여자가 당한 고통이 너무 크기에 그 여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었다. 이 모든 일이 그 마을에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단 50여 명의 소년병이 퇴각하기 전에 와서 한 일이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김혜자는 그곳에서 전쟁 때 소년병이었던 한 소년을 만나 물어보았다. 사람을 죽여봤느냐고,
그러자 그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사람의 팔다리를 잘라봤느냐고 그랬더니 해봤다고 했다. 또 강간을 해봤느냐고 물었더니 수없이 해봤다고 했다. 어쩔 수 없었다면서.

사실 원래는 반군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밖에 안 됐는데 그들은 마을에 들어가 무조건 아이들을 잡아왔다. 그리고 다른 마을을 습격하기 전 아이들에게 마약을 먹인 다음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총을 쏘라고, 강간을 하라고 시켰다. 한두 번 정도 이런 일이 계속되면 소년병들은 시키지 않아도 하게 되었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자 그 소년병들은 이제 다이아몬드를 캐고 있다. 김혜자가 소년에게 또 반군이 생기면 그쪽으로 들어갈래?라고 묻자 그 소년은 또 들어가겠다고 했다. 자기는 아무 힘이 없고 기대될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정신이 온전한 애들이 아니니까요. 나는 제일 필요한 게 소년병에 대한 정신적인 치료이고, 강간 당한 여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관심이 이라크에만 쏠려 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도 사람이에요. 우리가 안 갔으면 이런 일 일어난 것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우간다에 갔을 때도 소년병 문제를 지켜봤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자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그런 애들을 위해 월드비젼이 정신치료병원을 세웠다. 소년들은, 처음에는 싸움만 하는 그림을 그리다가 나중에서야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서로가 저지른 죄를 이야기하며 그래, 나만 그런게 아니야 하면서 점차 치유를 해나갔다고 한다.

“보니까, 전쟁 종결 마지막 2년이 최악이었어요. 그랬던 상황이 유엔평화유지군이 주둔하면서 끝났지요. 하지만 정세가 늘 불안정하기 때문에 언제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김혜자는 애타는 눈빛으로 유엔이 계속 시에라리온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접국인 라이베리아가 내전 중인 것도 걱정이다. 또 그런 지옥 같은 상황이 재연될까봐서다.

“다른 소아프리카 국가들은 비가 안 오거나 땅이 좋지 않아서 농사짓기 힘든데 이 나라만 비옥해요. 가뭄도 없어요. 정직하게 농사를 지었으면 비옥한 땅이기 때문에 2모작도 가능하죠. 그렇게 농사 지어서 소박하게 살면 되는데, 다이아몬드 때문에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꿔요.”

그런 탓일까. 그 나라에서 다이아몬드를 봤더니 예쁘지가 않더란다. 나라를 망치고 소년들을 굶게 만들고 전쟁이 이어지게 한 다이아몬드였다. 정말 지혜 있는 사람들이 정치를 했으면 이 나라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두 사람은 그곳에 머물면서 통역을 맡아준 쿤바에 대해서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쿤바는 군대의 간호장교였다. “이 친구가 우느라고 말을 못해요. 그리고 나서 나(한비야)한테 이야기해주면 또 제가 울고, 제가 선생님께 이야기해주면 우시고…마치 도미노같이 우리 셋이 울었던 게 떠올라요. 너무나 슬프고 놀라웠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는 생각이 컸지요.

전쟁이란 자체가 집단 광기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소유하고자 했던 다이아몬드가 이 전쟁을 길게 만들어 결국엔 모든 이들을 파괴했다는 거죠. 다이아몬드가 반군의 지원금이었기 때문입니다.” 한비야는 시에라리온에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 나라에는 지뢰가 없다는 것을 꼽았다. 반군이 쓸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든 전쟁은 같아요. 이번에 전쟁의 실체를 본 것 같습니다. 전쟁이 나면 사실 군인은 별로 죽지 않아요 민간인이 많이 죽죠. 그 중에서도 아이들과 여자가 전쟁의 최대 피해자예요. 그리고 잔인한 가해자도 결국은 피해자가 되잖아요. 이 얼마나 모순인가요?”.

한비야는 그래서 아무리 어떤 명분을 붙여도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이야기한다. 자신들은 전쟁의 또 다른 얼굴을 봤다는 것. 전쟁을 막는 일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다. 너무나 잔인한 인간 군상들을 목격해서일까. 김혜자는 인간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든다고 한숨을 내쉬며 털어놨다. 그래서 자신이 아프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병난 적이 없었다. 그 고통받은 사람들한테 카메라를 들이댔던 자체도 인간이 얼마나 묘한가를 보여준다고 눈물을 글썽인다.

“전쟁이 나면 다 미치는가 봐요. 전쟁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그런 처참함을 보고도 밥을 먹는 자신이 이상하더라는 김혜자. 인간이란 게 이렇게 이상한 거구나, 하고 느꼈다. “에티오피아 갔을 때도 이 모순, 이 이율배반을 느꼈는데….”

시에라리온을 다녀온 후부터 김혜자는 온통 머리에 시에라리온 생각뿐이다.
“그 나라 사람들에게, 이 세상에는 따뜻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어 하고 한 줄기 따뜻한 빛을 주고 싶어요.”

김혜자는 지금 그렇게 되기 위한, 너무나 강한 열망에 불타고 있다. 그래서 김혜자는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해볼 용기가 생겼다. 평생 해본 적이 없는 대중 강의에도 참석하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시에라리온을 알려 그들을 돕고 싶기 때문이다.

“김선생님은 너무 멋진 분입니다. ‘한국의 어머니’가 괜히 붙여진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어요. 이번 여행의 수확으로 김혜자라는 다이아몬드를 캐 갖고 온 것을 꼽고 싶어요. 이렇게 마음이 통하면서 같이 다녀본 경험, 너무 좋았습니다.” 한비야의 말에 김혜자는 다정하게 한비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한비야씨가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가능했어요. 특이하게 영어를 한국말보다 더 잘하는 사람. 놀랐어요. 저렇게 능력 있는 사람이 이런 일에 동참하게 됐다는 게….”

우리나라에서 모금된 성금은 전쟁 때 강간당한 여자들을 위한 재활교육 활동에 쓰인다. 그리고 치료소를 만들어서 말라리아나 설사병 등 기초적인 병의 퇴치에도 쓰일 예정. 아울러 주민들의 농업정착 사업에도 도움을 줄 계획이다. “우리는 아동들과 후원자의 일대일 결연사업도 할 생각이에요. 한 달에 2만원으로 한 아이를 18세 때까지 잘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정말 자신들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는 김혜자·한비야. “이것을 꼭 알려야 해요”라고 말하는 그들의 눈빛이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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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_강은영 기자 사진_이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