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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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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한비야]'검은 천사' 케냐 외교관 부인 2002.04.21 중앙일보
2006.09.04

헤라트는 아주 유서깊은 도시다. 예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오아시스로 중국.인도.아랍 대상들이 만나는 경제와 문화의 교차로였다. 1천여년 전 세계 지도에도 로마.바그다드.시안(西安)과 함께 나타나는 곳이 헤라트다. 15세기 막강한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라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파란 타일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요사원이 그 때의 찬란함을 대변해 준다.

오늘날에도 헤라트는 물자의 교차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란을 통해 유럽과, 북쪽으로는 투르크메니스탄을 통해 철도로 유럽 및 아시아로 연결된다. 각국의 물자가 이 루트를 통해 쏟아져 들어오니 경제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탈레반조차 이 중요성 때문에 헤라트에서 교전을 피했다고 한다. 이 지역의 1인자 이스마엘 칸이 중앙정부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재래시장인 바자는 물건과 사람들로 분주하고 풍성하다. 공항에는 폭격당한 비행기 잔해가 그대로 남아있으나 도심에는 부서진 건물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무장을 한 군인을 잔뜩 실은 트럭과 소총을 멘 군인들이 보이지만, 내가 쳐다보고 웃으면 손까지 흔들며 반가워하는 이들에게선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밑으로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헤라트 근처 산악지역에 은신 중인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잔당들이 운신이 쉬운 봄을 이용해 곧 활동을 개시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유엔 안전담당관은 브리핑을 통해 오는 6월 말 임시정부의 임기가 끝나면 종족간 세력 다툼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 있다며 각 구호단체들은 만약을 대비하라고 당부할 정도다. 이런 물밑 기류를 비롯한 갖가지 상황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물어볼 현지인 친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다. 소하일과 쉐킬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통역담당 소하일. 열여덟살, 어리지만 품위와 애국심이 넘쳐흐른다. 탈레반 시절 몰래 배운 영어 실력이 놀랍기만 한다. 미군이 탈레반을 쫓아준 것은 고마우나,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범위에 대해서는 신중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저녁에는 야학에서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는데 영어를 알아야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하게 되며 그것이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학생에게 2천원 정도의 월사금을 받지만 3백50명 중 절반은 무료학생. 한달에 50달러의 건물 임대료가 늘 모자라 열두명 선생님이 추렴해서 낸다고 한다.

야학에 가보니 전깃불도 없이 깜깜하고, 발디딜틈 없이 꽉 찬 교실에는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만이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소하일은 이들을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라고 했다. 나도 기꺼이 그 미래에 두달치 임대료 1백달러를 투자했다.

쉐킬라는 헤라트의 유일한 여자 치과의사다. 카불 의과대학을 나온 서른네살의 장난기 가득한 아기 엄마인데, 탈레반 고위 간부의 개인 치료를 거부해 2년간 영업이 정지됐었단다. 이를 빼기만 하면 돈을 받지 않는다. 치료를 더 이상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병원이 바로 우리 사무실 앞이라 무시로 드나들며 식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여의사 양성이 소원이라는 쉐킬라는 어제 작별인사를 하면서 끼고 있던 반지까지 빼주며 아쉬워했다. 아쉽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 우편행정이 마비돼 전화도, 편지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파견근무를 하면서 만난 또 하나의 보석은 우리 월드비전의 영양사 제니퍼다. 보는 사람마다 껴안아주어 동네에서는 마마(엄마)로 통한다. 케냐 고위 외교관 부인으로서의 특권과 안락함을 뒤로 하고 15년째 긴급구호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르완다.수단 등 기근과 전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이 검은 천사는 이곳 산골마을에서도 이미 수천명의 어린 목숨을 구해냈다.

"현장에 오면 힘이 펄펄 나요. 사람을 살리는 일에 내 힘을 보탠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죠." 1백% 동의한다. 내일 나는 수도 카불로 떠나, 거기서 아프가니스탄 파견 근무를 마치게 된다. 헤라트와는 여기서 이별이다. 호다하페스 헤라트(헤라트여, 안녕) 다음 번은 서울에서 이번 헤라트 편지를 마무리할 작정이다.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designtimesp=23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