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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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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일보] 한비야의 구호현장에서 만난 하나님 (6) 큰 힘 주는 중보기도
  • 2009.01.28



 

갑옷·방패 챙겨주는 ‘손길’ 있음에…

"다른 사람 목숨을 살리려면 네 목숨을 걸어야 한다."

긴급구호 일을 시작하기 직전, 어느 외국 구호요원한테 들은 말이다. 얘기인 즉, 구호요원은 소방관과 같다는 거다. 불이 나면 모두 피신하지만 우리는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불구덩이 속에 사람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사람을 구해내야 한다는 거다. 뜨끔했다. 새로 시작하는 일에 있는 힘을 아끼지 않을 결심은 했지만 목숨까지 내놓으라니….

물론 현장에서는 구호요원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일의 성격상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불을 끄기로 나선 이상 말이다. 실제로 지난 8년 구호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해외 동료 중에는 오른팔이 절단된 사람도 있고 실명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아찔했던 순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2005년 10월, 순식간에 8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키스탄 대지진. 그 긴급구호 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일한 덕분에 우리 의료팀은 열흘간 1,550명의 귀한 생명을 살릴수 있었다.

월드비전 한국은 재난 발생 48시간 내에 의사 3명을 포함한 의료팀을 꾸려 가장 피해가 크면서도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산간지방으로 갔다. 지진으로 무너진 산길을 군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넘어 도착해 보니 산간마을들은 하나같이 모래성을 밟아버린 것처럼 처참하게 뭉게져 있었다. 주민 수만명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말이 실감났다. '저 정도로 강력한 지진이면 여진도 만만치 않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땅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여진이었다.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일행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천연 놀이동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호호호."

그러나 그날 밤 나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영하 15도 땅밑에서 올라오는 한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이 깊은 산속에 묻혀버리면 어쩌나 해서다. 나야 구호팀장이니 이 일을 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자원봉사를 온 우리 의료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무사해야 할 텐데….

잘랄라아아(지진이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에 텐트 밖으로 튀어 나갔다. 다음 순간, 몸이 휘청해질 정도로 강한 여진이 느껴졌다. 앞산이 뭉개구름 같은 먼지를 내며 무너져 내리면서 계곡을 메우고 있었다. 흙더미가 우리 텐트촌을 덮칠 기세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건 여진이 아니라 또 다른 강진이 분명했다. 나는 일행에게 소리쳤다. "각자 여권을 꺼내 조끼 주머니에 넣으세요." 철수하자는 말이 아니다. 여권은 최악의 상황에서 주검 확인시 가장 정확한 신분증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후 여진은 잦아들었지만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일한 덕분에 우리 의료팀은 열흘간 1550명의 귀한 생명을 돌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뢰가 많이 묻혀 있는 나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그랬다. 우리는 바드기스라는 산악지역에서 식량배분과 치료영양죽 사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나는 1주일에 한번씩 전쟁 때 비행장으로 쓰던 공터에서 식량을 나눠주는 일을 맡았다. 어느 날 시내에 있는 본부에 오니 유엔에서 발표한 지뢰매설도가 나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칼이 쭈뼛 섰다. 세상에…. 내가 두달간 열심히 누비고 다니던 그 비행장 안팎이 온통 지뢰매설 표시인 빨간 해골바가지투성이 아닌가? 그곳에 묻혀 있는 지뢰가 100㎏ 이상의 무게에 터지는 대전차 지뢰였기에 망정이지 3㎏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인지뢰였다면 내 발목은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을 거다.

이라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전쟁 직후 이라크 주민들은 미국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고 월드비전이 국제기구인지는 모르고 미국 기관이라고 오해하며 우리까지 미워했다. 길거리를 가면 대놓고 욕하는 아이도 있고 사무실 창문에 돌 던지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날 미군들과 회의를 하려고 우리 팀원들이 두 대의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앞차에 탔던 내가 중요한 서류를 잊고 와서 뒤차로 갈아타고 사무실로 가는 도중 앞차에 불이 붙는 일이 있었다. 차는 전소했지만 다행히 그 차에 탔던 사람들 모두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는데, 전소한 차의 잔해에서는 사재 폭음탄 장치가 발견되었다.

새삼 돌아보니 지뢰밭과 전쟁터를 돌아다닌 8년간이 아찔하기만 하다. 액션영화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어떻게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매번 무사할 수 있었을까? 그저 운이 좋았다는 걸로만은 설명이 안 된다. 어떻게 만날 나만 운이 좋을 수 있는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는 딱 한 가지, 중보기도의 힘이다. 내가 구호현장에 갈 때마다 밤낮으로 기도해주는 가족들, 친구들, 독자들, 그리고 500여명의 월드비전 동료들. 이들의 간절한 기도는 갑옷과 방패가 되어 현장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철통같이 보호해주었고, 두려움에 맞서는 나와 함께 싸워 주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어떤 현장도 두렵지 않다. 죽음도 이기는 기도, 중보기도의 용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이렇게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죽고자 하면 살리라고.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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