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이라크 모술에서 일하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남을 잘 돕는 다는 것이 절대로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과 자립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호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현지인들이 먼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형태여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를 통한 식수사업을 벌인다고 할 때 우리가 먼저 교장선생님들을 모아놓고 이런 일을 하려고 한다라고 "통보"하면 안된다. 반대로 그들에게 깨끗한 물이 가장 절실하다는 말이 나와야 비로소 일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시혜자인 것처럼 행동하면 절대로 안된다.

우리가 그들과 이 어려운 시기를 같이 넘기는 동반자라는 공감대가 필수다. 그래야 주민들이 이건 월드비전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할 일을 월드비전이 옆에서 돕고 있구나 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되어야 우리가 긴급구호를 마치고 철수했을 때도 우리의 지원시설이 잘 유지가 될 수 있는거다.

여기서 지내면서 일 이외에 가장 어려운 점은 단연 살인적인 더위다. 8월 중순 모술의 최고 기온은 무려 54도다. 오전 8시께 이미 30도가 넘는다. 한낮이 되면 바로 머리위로 대형 불가마에서 쏟아내는 불덩이가 떨어진다. 잠시만 바깥에 나가도 불화살을 맞은 것처럼 얼굴이며 팔이 따갑다. 위성전화를 하려면 반드시 옥상에서 수신을 해야하는데, 한 5분만 통화를 해도 땀으로 셔츠가 흠뻑 젖을 정도다.

일과 후 샤워를 하려고 찬물을 틀면 컵라면을 끓여먹어도 좋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온다. 옥상 물탱크가 하루종일 열을 받아서인데, 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은 일단 양동이에 받아 식힌 다음에 샤워를 해야 한다.

오후에 많이 돌아다닌 날은 밤에 자려고 누우면 천장이 왔다갔다하면서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린다. 어느 때는 몸살난 것처럼 온몸의 근육이 쑤시기도 하는데 이건 그날 물을 제대로 많이 마시지 않았거나 땀을 많이 흘려 몸안에 염분이 모자라서 그렇단다.

한마디로 더위를 먹은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전기가 하루에 서너 시간 밖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천장에 붙어있는 선풍기도 무용지물이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더위를 식히느라 얼음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데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얼굴과 손발이 퉁퉁 부어서 신발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정말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러나 이런 괴로움은 한국에서 식구들이나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의 따뜻한 이메일을 받으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특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조카들이 날 웃겨보겠다고 보내는 온갖 유머를 읽고 있으면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눈물이 나려고 한다.

전기사정 때문에 인터넷 연결이 하늘의 별따기지만 그런 와중에도 요즘 나는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대부분은 긴급구호 일을 하고 싶은 데 어떻게 해야하냐는 질문이다. 내 대답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거다.

긴급구호에서 필요한 일은 아주 다양하고 재난의 종류에 따라 또 진행하는 사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현장에는 핵심적이고도 기본적인 4가지 분야가 있다. 물, 식량, 의료 및 피난처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식수사업을 위해서는 물 전문가가 수질을 검사하고, 수자원을 파악하고, 원활하고 체계적인 물 공급을 위해 전략을 세워야한다. 재작년 아프가니스탄 구호는 영양사가, 작년 남부 아프리카 기근 현장에서는 배분전문가가 필요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현장에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한가지 경고. 긴급구호현장은 절대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반대로 항상 생사를 가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최전선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물자를 나누어주던 공터 뒷편이 완전히 지뢰밭이었다. 남부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에 걸려 온몸이 고름덩어리인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안기기도 한다. 여기 이라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 일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한번씩 간 떨어질 것 같은 일을 겪을 때마다 나는 내게 묻는다. 정말 이 일이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만큼 가치있는 일인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사람만 살리고 가도 본전인데 긴급구호를 통해서는 수천, 수만 명을 살리는데 일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번 죽을 목숨이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할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잠깐 잘 알려지지 않은 모술애기를 해보겠다. 나는 여기 오기 전에는 막연히 이라크 사람들은 100% 모슬람일꺼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는 50만명이 넘는 기독교인이 있다고 한다. 특히 모술은 이라크내에서도 기독교신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 도시 외곽 니느웨지방은 구약성경에서 요나가 고기 뱃속에 갇혀 곤욕을 치른 후 찾아갔던 바로 그 도읍이다.

이곳에서는 모슬람 사원과 십자가 우뚝 선 교회가 나란히 있고 모슬람의 기도소리와 교회의 종소리를 같이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소수의 기독교 신자들이 얼마나 모진 핍박을 받을까 생각하겠지만, 내 보기에 이들은 박해는커녕 오히려 대접받고 산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림새부터 훨씬 자유로운데 여자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고 딱붙는 바지나 짧은 소매를 입어도 괜찮다. 후세인 정권 때에도 기독교 신자들의 상권은 철저히 보호되었다고 한다.

그 옛날 모술은 인도와 페르시아 및 지중해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초강국 앗시라아의 수도로써 약 200년간 문명 세계의 중심지였다. 그래서일까? 이곳에는 아주 다양한 종족과 종교가 섞여 살고 있는데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이라크는 티그리스강, 유프라데스강 유역에서 발달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쇄기문자와 함무라비 법전이 만들어진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생지이다.

모술은 거대한 박물관

모술을 비롯한 니느웨 지역 전체 역시 거대한 고고학 박물관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3000년도 넘는 성곽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데 우리 숙소 바로 뒤에도 성곽의 일부와 거대한 돌문이 버티고 있다. 그 돌문 주위에는 당장이라도 날아 올라갈 것 같은 날개 달린 말 석상과 그 옛날의 쇄기문자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곳 주민들은 아랍계가 60%이상 주류를 이루지만 쿠르드족도 30%나 된다. 그 외에 앗시리아인, 투르크만, 그리고 공작새가 상징인 토속종교 예지디 교인도 십만명이 넘는다.

물론 각 집단이 늘 잘 지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이라크 북부에 살고 있는 400만명의 쿠르드족은 늘 독립 국가를 세우려고 하고 있어 이를 막으려는 아랍정부와 항상 팽팽히 맞서는 곳이다.

지난 정권 때는 극심한 탄압을 받았으나 전쟁이 끝난 지금은 이라크 어느 곳보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지역으로 변했다. 이러한 쿠르드족의 전쟁 후 역전이 국내난민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