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여행가로 잘 알려진 "바람의 딸" 한비야씨가 "절망과 혼돈의 땅" 이라크에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한씨는 세계적인 선교단체인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을 맡아 전쟁과 폐허 속에서 현지 주민들을 보듬으며 나눔과 베품의 소명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동양일보는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일시 귀국한 한비야씨가 이라크 현지에서 몸소 경험한 참담한 실상과 월드비전의 구호활동 내용을 생생하게 전하는 르포 "한비야의 이라크 통신"을 8일부터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깨끗한 "한 방울의 물" 가장 급하다

여기는 이라크 북부 모술. 내가 지난 6월부터 긴급구호팀의 일원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곳이다. 모술은 바그다드, 바스라에 이은 제 3의 도시로, 사담 후세인의 두 아들이 이곳에서 피살당하면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바그다드 UN본부 폭발사건이 있던 날, 이곳에서는 후세인 정부 제 2인자인 라마단이 생포됐는데, 잡히기 몇 시간 전까지 사담 후세인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 전역이 그렇겠지만 이 곳 모술 역시 신문이나 방송에서 말하는 것 보다 훨씬 위험하다. 점령군이 미군이 치안 유지를 전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나 미군들이 이태원을 방불케 할만큼 많지만 미군정에 반대하는 세력, 사담 후세인 충성세력., 시리아·이란·사우디에서 유입된 해외세력들의 치밀하고 조직적인 공격에 거의 속수무책이다. 하루도 미군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 날이 없다.

문제는 모든 외국인들을 미군의 협력자로 여기면서 UN을 비롯한 월드비전과 같은 인도적인 구호단체까지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 UN창고는 벌써 3번이나 큰불이 났다. 열흘전 우리 숙소 바로 50미터 떨어진 UN사무실에도 집중 총격을 당해 현지인 3명이 사망했다. 그 날 밤 11시경부터 그야말로 콩볶는 듯한 총소리가 났었다. 이런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방탄 조끼와 무전기 등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다닌다. 또한 1시간 내에 현장에서 철수할 수 있도록 가방도 항상 싸놓아야 한다. 조직적인 세력도 문제지만 일상생활 중의 치안부재도 큰 문제다. 벌건 대낮에 집안으로 도둑이 들어오고 노상강도를 당하고 타고 가던 차를 빼앗기는 일이 단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후세인이 전쟁 직전 감옥에 갇혀 있던 죄수 12만 여명 전원을 무조건 풀어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그 중에 정치범도 있지만 대부분은 잡범으로 이들이 지금 정부도, 경찰도 없는 틈을 타서 제 세상을 만난 듯 온갖 나쁜 짓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감에 떨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제직원인 우리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 전 월드비전에도 전화와 편지를 통한 협박이 있었다. 모술을 떠나지 않으면 사무실과 숙소를 폭파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위험을 무릎쓰고 일을 하고 있는가. 이게 바로 긴급구호이기 때문이다. 긴급구호란 간단히 말해 전쟁 등의 인재(人災)나 지진, 홍수 등 천재(天災)로 목숨과 안전이 위험한 사람들을 긴급하게 구해내는 일이다. 119 구조대원이나 소방대원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불구덩이나 무너져 내리는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긴급구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이렇게 피할 수 없이 일정 수준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전쟁 구호현장에서는 평화유지군 사상자보다 구호요원의 사상자가 훨씬 많다는 통계다. 긴급구호요원이면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험수위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면 언제든지 후방발령을 요청할 수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제일 시급한 것은 깨끗한 물이다.

월드비전은 UN 협력단체이기 때문에 유엔기를 이용할 수 있는데, 모술 근처에 오면 끝없이 이어지던 사막 가운데 거짓말처럼 티그리스 강이 초록색 띠모양으로 나타난다. 모술에는 이렇게 풍부한 수량의 티그리스 강이 흐르고 있을뿐더러 근처에 막대한 양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댐이 있기 때문에 물 자체는 걱정이 없는 곳이다. 문제는 상수도 시설과 수질이다. 두 번의 전쟁과 12년간의 UN 경제재제로 인해 상수도 시설이 형편없이 파괴되고 수돗물관리가 엉망이 됐다. 정부 통계로는 수돗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이 전국의 60%정도라는데 그나마 송수관이 심하게 부식되어 녹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대로 마실 수 없는 실정이다. 한낮의 기온이 50도가 넘는 더위에도 주민들은 씻기는 커녕 먹는 물도 아껴 마셔야 할 형편이다. 더욱이 이 곳은 화장실 뒤처리를 물로 하는 것이 풍습인데 물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잘 씻지 않은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지거나 음식을 먹으니 병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지역 보건소장의 말에 따르면 지난주 환자 246명 중 69%가 설사 및 눈병 등 깨끗한 물 부족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래서 월드비전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라도 깨끗한 물을 실컷 마실 수 있고, 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학교를 통한 식수 및 위생사업을 벌이고 있다. 각 학교에 식수대를 설치하고, 화장실에서 항상 물을 쓸 수 있도록 넉넉한 용량의 물탱크를 배치하는 일이다. 이 외에도 월드비전에서는 모술과 서부의 알 룻바에 국내 난민보호와 전후 어린이 보호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식수 및 위생사업이 내가 담당하고 있는 일이다. 내 직책은 프로젝트 매니저. 약 40억원의 총 예산으로 한국, 미국, 호주지원사업을 총괄하고 있는데 170개 초·중학교 학교에 7만5000여명이 대상이다. 이중 한국사업장의 규모는 14억원으로 31개의 초· 중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영원무역과 이랜드의 의류기증물자도 14만벌이나 된다.

특이할 사항은 한국사업에는 월드비전 후원자들의 정성어린 후원금과 참여연대의 지원금 등 이외에도 2억 4000만원의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한 정부 지원금이 들어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들이 낸 세금이 여기 이라크에서 깨끗한 물로 변해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가 불가피하게 파병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편 이렇게 월드비전과 같은 민간단체를 통해 인도주의적 긴급구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곳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여기 모술현장에서 나는 9명의 국제지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사업운영본부장, 물자운반 및 배분, 재정 및 인력수급, 안전, 홍보, 물 전문요원 3명의 프로젝트 매니저다. 나는 이번에 처음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었는데 한국 월드비전 53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년 전 아프가니스탄 파견 때는 홍보담당이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어쨌든 맡겨진 일이니 정말 잘 하고 싶다.

내가 한국인의 판단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하면 한국 사람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구나 할거고 못하면 한국 사람들은 아직 국제무대에서는 멀었다고 할 것이 아니가. "한국대표선수"란 부담감 덕분에 더욱 긴장이 되어 도대체 혓바늘이 가시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