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와 독초

이번 여름 휴가 때, 지리산 종주를 했다. 길어야 2박 3일 걸리는 45Km 종주길을 꼬박 나흘 동안 걸었다. 걷는 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많은 "게으른 산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 아니면 새벽 기차에서 내려 노고단으로 걷기 시작할 때 벌어진 별잔치를 놓쳤을 거다.

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금강석을 깔아 놓은 듯 반짝거렸다. 별이 하도 예뻐 아예 길에 드러누워 있던 덕분에 별똥별도 4개나 보았다. 그 날 밤, 연화천 산장 명성봉에서 본 지리산의 밤 경치는 평생 잊지 못할 거다. 달빛아래 펼쳐지는 높고 낮은 능선의 파도는 천상의 파노라마였다.

다음 날, 세석평전의 보름달은 어떻고! 휘영청 밝은 달빛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어, 머리 위에 있던 보름달이 45도 각도로 기울 때까지 달구경을 했다. 만약 낮에 힘든 산행을 했다면 보름달이고 뭐고 그냥 쓰러져서 잤을 테니, 이건 정말 게으른 산행이 준 특별 보너스다.

뿐만 아니다. 그 많은 야생화, 각양각색의 들꽃이 종주 길을 따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누군가 공들여 가꾼 것 같은 온갖 종류의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다. 그야말로 산 전체가 초대형 꽃밭이다. 제일 눈에 띄는 오렌지색 동자꽃, 종 모양의 보라색 모싯대, 소박한 꽃들 사이에 고혹적인 진분홍색 산나리까지... 이런 꽃 잔치 덕분에 턱까지 숨이 차면서도 기분이 좋아서 저절로 히죽히죽 웃음이 났다.

이렇게 천천히 걷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경고문이 보였다.

"지리산은 약초와 비슷한 독초가 많으니 산나물 약초 채취를 일절 금합니다."

세석산장 등산로에서 본 푯말에도 "진달래와 철쭉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진달래는 흔히 먹는 꽃이나 철쭉은 먹으면 눈이 멉니다"라고 써 있었다. 겉보기에 비슷하다고 사이비를 먹으면 큰일나니 주의하라는 말이다.

사이비(似而非), 글자 그대로 비슷하나 다른 것이다. 그 다르기의 정도가 약초와 독초처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사이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모든 사이비에는 공통점이 있다. 진짜보다 더 현란하고, 더 보기 좋고, 더 진짜 같다. 사이비 옆에서는 진짜가 초라해 보인다. 사이비의 본질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니 속지 않으려면 평소에 진위를 가려내는 감식안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

진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진짜와 사이비, 그럼 나는 과연 어떤 쪽일까?

소박한 진짜인가, 현란한 사이비인가. 사이비에 속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사이비가 되어 남을 현혹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때 나는 쓸데없이 말이 많아진다. 미사여구, 인용구 등을 쓰며 문장을 현란하게 만든다. 일종의 교란 전술인데 지금 보니 이게 바로 사이비의 특징이 아닌가?

반대로 내가 분명히 아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주어와 목적어만으로도 뜻을 충분히 전할 수 있다. 간단명료하고 소박하게 말이다. 그러니 내가 사이비가 되지 않으려면 정확히 알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스스로 실천하고 있는 일만 쓰고 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우선 "진짜"로서의 시작은 되는 것이 아닐까?

성서에도 이렇게 쓰여 있다. "혀를 놀려 악한 말을 말고, 입술을 놀려 거짓말을 말아라" (시편 34:13)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