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섬기는 사람들 - 한비야씨, 짐바브웨서 편지」"행복 나눔에 중독됩시다
  [국민일보 12/31]

여기는 남부 아프리카 짐바브웨. 수년째 가뭄이 들어 지독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곳에서 서신을 드립니다.
지난해 이곳의 식량 수확량은 평년의 1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짐바브웨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레소토, 스와질란드에도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유엔과 민간 국제구호단체를 연결하여 구호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 9월부터 이곳에 와 짐바브웨, 레소토, 스와질란드 등을 오가며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긴급 구호식량을 배분하고 있습니다.

파견 근무 첫 주에 현장실태 조사차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 갔더랬습니다. 아침인데도 아이들 대부분이 책상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금요일 점심 학교급식 이후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월요일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쌀보나니(잘 지내지)?"하고 제가 인사를 건네니 며칠 굶은 아이들이 어디에서 힘이 나는지 목청을 돋워 한 목소리로 "이예보(그럼요)!"라고 대답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 중에는 너무 배가 고파 공부시간에 기절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영양상태가 좋지 못하면 말라리아 같은 하찮은 병에도 치명적이지요.

작년 한 해에 전교생이 280명인 작은 이 학교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가 10명도 넘었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 한끼만 먹어도 살 수 있습니다. 월드비전이 제공하는 한끼 급식비는 200원. 이 돈으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적어도 수확기인 올 4월까지는 급식을 해야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하면 안됩니다. 소중한 생명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현장에 다녀오면 "돈 좀 내!"하고 소리를 지릅니다. 이건 얼마나 좋은 일일까요.

굶주린 사람에게는 당장 먹을 식량을, 돕는 사람에게는 사람 살리는 기쁨을 줄 수 있으니 말이지요. 저 또한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표정과, 도와주는 사람들의 "나 참 잘했구나" 하는 흐뭇한 표정을 모두 목격하면서 "내가 바로 복(福)의 통로"라는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현장에만 가면 혓바늘이 돋고 입안이 다 헐어도 신바람이 나서 일을 하게 됩니다.

나눔이란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남을 돕는 그 높은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자꾸만 더 돕고 싶어집니다. 내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준다는 것, 그것보다 더 대단하고 신비스러운 것을 저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해보면 재미 있고 좋아서 남에게까지 적극 「나눔」을 권하게 됩니다.

저는 올 한 해 한국인들이 모두 나눔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봅니다. 우리의 따뜻한 손길이 태안반도를 거쳐 방글라데시에도 가고, 제가 있는 아프리카에도 왔으면 합니다. 저는 7년째 구호활동을 하면서 왜 하나님이 인간의 손을 두 개 만드셨는지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한 손은 나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손은 남을 위해서…"

나누는 것을 사랑하고, 어려운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하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큰 소망의 새해가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