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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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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가장 취악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도록
- [한비야]내가 만난 지구촌 난민들 2002.03.10 중앙일보
- 2006.09.04
| 나 역시 처음에는 진기한 구경거리로만 여겼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난민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한 컷' 건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핑크 보이'를 만났다. 동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다. 한 가톨릭 단체가 운영하는 자생 난민촌을 '구경' 삼아 들어가니 아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피란 중 부모를 잃은 아이들 20여명이 하루 종일 내 주위를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그중에 나와 눈만 마주치면 혀를 쏙 내밀고 웃는 다섯살짜리 꼬마가 있었다. 동그랗고 까만 얼굴에 분홍색 혓바닥이 너무나 귀여워 '핑크 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하루는 비자 문제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갔다와 보니 아이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장난치느라 숨었구나 생각하고 "핑크 보이 나와라, 못찾겠다 꾀꼬리"하며 찾으니까 직원 한명이 끔찍한 말을 전한다. "그 아이들 다 죽었어요." 그 며칠 사이에 콜레라와 괴질이 돌았단다. 사망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8백원짜리 링거 한 병이면 간단히 고칠 수 있는 탈수증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내전 중인 수단을 탈출한 키멧이라는 열세살짜리 여자아이와 친하게 됐다. 영어도 아주 잘하고 말투며 행동거지가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였다. 키멧은 커서 국제 구호단체의 간호사가 되고 싶다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라고 굴뚝 같이 믿고 있었다. 수단으로 가는 배편을 물색하고 며칠 후 다시 들렀는데 당연히 날 반겨야할 아이가 인사불성으로 야전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막인즉 간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군인 5~6명에게 윤간을 당했다고 한다.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에서도 가슴아픈 일을 겪었다. 한여름 땡볕 아래 텐트 안은 살인적으로 더웠다. 세상 모르고 뛰어 노는 아이들의 온몸에는 무슨 피부병인지 붉은 반점으로 가득하고, 피란길에 탈진한 노인들은 가쁜 숨을 토해냈다. 내 눈을 끄는 것은 6개월 정도의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였다. 아이는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가늘고 배가 튀어나온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눈동자도 돌아가고 입에는 거품까지 물고 있는 것이 살기 어려워 보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무엇을 보았는지 환호성을 지르면서 나에게 얼른 와보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아이 입을 벌려 보였다. 세상에, 아이의 아래 잇몸에서는 하얀 이가 두 개 돋아나고 있었다. 몇 시간 후 그 아이는 죽고 말았지만 그 엄마의 얼굴에 잠깐 스쳤던, 이가 나는 걸 보면 내 아이는 살거라는, 그 희망의 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순간 난 진심으로 그 엄마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내가 의사라면, 긴급구호 요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도,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그때 그렇게 부러워하던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긴급구호가 뭐하는 거예요?" 오지 여행가에서 월드비전 긴급구호 팀장으로 변신했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심지어 "119구조대에 들어갔다면서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긴급구호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신속히 살리는 일이다. 병원으로 비유하면 응급수술실이라고 하겠다. 전쟁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대량 피란민이 생길 것이다. 이들을 긴급하게 구호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수를 파악하고 통제한 후 물.식량.의약품.천막 등을 확보하고 그 물자를 신속.정확하게 배급해야 한다.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홍보다. 현장 상황을 잘 살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어떤 물자와 도움이 필요한지 세상에 알려야 한다. 또한 이웃 나라를 설득해 사람들에게 안전한 피신처를 제공하는 것과 그 사람들이 돌아와 잘 정착하도록 돕는 것까지가 긴급구호 홍보인데 내가 맡은 일이 바로 홍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 여자와 어린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여자 홍보요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녀의 구분이 엄격한 이슬람 문화의 특성상 남자 요원들이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헤라트 파견근무 중에는 또 얼마나 많은 핑크 보이와 키멧을 만나게 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고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이번에는 절대, 안타까워 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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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designtimesp=23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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