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사업 보고

파키스탄 보고서 2 2005년 12월 30일

‘차렷!’
자보리에 도착하니 물자배분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월드비전은 자보리, 나와자바드를 비롯해 산악지역 4곳에 거점을 마련해놓고 대형 텐트로 된 창고를 두고 물자를 배분하고 있습니다. 물자배분은 매우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지역주민들은 차례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면 신분증을 가지고 나와서 신원확인을 받고 지장을 찍었습니다. 이 확인 과정에는 군인도 배석합니다. 철저한 점검 과정을 거치는 만큼 물자배분에 시간도 꽤 소요되었습니다. 함께 동행 했던 사이드라는 아프간에서 온 물자배분 담당직원은 “시간이 들어도 분배과정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주민들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NGO에 대한 불신이 생겨서 이후 사업에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라고 했습니다.
첫날 만세라 창고에서 봤던 family kit, 위생 kit, 식량 그리고 영원무역에서 기증한 방한복을 주민들에게 함께 나눠주었습니다. 모든 물자는 6인 1가구 기준으로 준비되었고 방한복은 한 가정에 3벌씩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방한복을 입어보라고 했더니 아이가 카메라 앞에서 긴장되었던지 통 웃질 않고 ‘차렷’자세로 서 있는데 어색한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물자 분배가 이뤄지는 모습 월드비전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이 바로 영원무역에서 기증한 방한복

물자를 받은 사람들의 공통점? 얼굴 표정이 밝아지고 발걸음이 빨라진다는 점입니다. 대기하다 신원 확인을 받고 배급소 앞에 다다를 때까지 별 변화가 없던 사람들이 물자를 받고 난 후에는 얼굴표정이 점점 밝아지며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뺏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뒤도 안돌아 보고 받은 물자를 챙기고는 잰 걸음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얼른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발걸음이 빨라지는 모양입니다. 마을 단위로 온 사람들은 물자를 한꺼번에 싣고 가기 위해 트럭을 구해 오기도 했고 당나귀를 가져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물자를 받으러온 라미, 물자 받는 곳에 라미 또래의 어린 여자 아이 외에는 여자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문자를 받아가는 모습을 ��한 눈으로 바라보는 노인들

배분 장소에 앉아 구경하는 아이들이 있길래 말을 붙여 보았다. 밤에 춥지 않냐고 물었더니 “녀석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대신 지진은 무서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지진은 여전히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진이 발생한지 두 달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현지에서는 크고 작은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기간에도 작은 여진이 한번 있었습니다. 집이 무너지지 않은 사람도 집안에서 잠자는 것을 두려워해 두려워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월드비전 파키스탄에서 긴급구호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프랭크에 따르면 우리가 우려했던 산악지역은 사정이 좀 괜찮아졌다고 합니다. 현재 많은 구호 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피해가 가장 심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조금 낫다는 것입니다. 월드비전도 분배를 만세라의 산악지역 외에 발라콧과 아보타바드 지역으로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월드비전이 자보리에 나눠준 텐트 모습

월드비전으로부터 어떤 물자를 지원받았는지 표시해 놓은 카드

산속에서는 해가 빨리 집니다. 낮에는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오후 3시가 되니 해도 서서히 넘어가고 바람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5시 정도에는 아주 깜깜해질 것 같습니다. 산속 주민들은 다음날 해가 떠 밤의 한기를 몰아낼 때까지 긴 시간 추위에 떨어야 할 것입니다.